영적독서

 

세마성당 2021. 8월 영적 도서: 「인간에의 연민」

관리자 0 530 2021.08.21 18:01

세마성당 2021. 8월 영적 도서인간에의 연민

현대 문명과 공해 문제에 대한 신학적 고찰과 비판 및 방향 제시

 

지은이 전헌호

전헌호(실베스텔신부는 서울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했고오스트리아의 Wien대학교에 유학하여 석사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5년 7월 5일에 서품을 받았다대구의 하양성당진량성당성바울로성당 주임신부로 근무했고가톨릭신학회 회장으로서 한국가톨릭신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며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장신학대학원 원장가톨릭 사상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현재는 인간과 영성연구소 소장으로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교의와 교의신학넉넉함 가운데서의 삶코모호숫가에서 보낸 편지불완전한 인간과 힘다시 찾은 기쁨아래로부터의 영성다시 찾은 마음의 평안참 소중한 나사랑의 집교회 영성을 빛낸 수도회 창설자행복한 선물영적 삶의 샘」 외 다수가 있고 저서로는 인간에의 연민자연환경인간 환경거룩한 갈망태양을 먹고 사는 아이들상대성 이론과 예수의 부활식물이 여행을 포기한 까닭은?내가 우주보다 더 위대하다고?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들인간그 전모원칙과 변칙 그리고 반칙가능성과 한계」 외 다수가 있다.

 

 

나눔의 글

 

각종 공해(공기 · 토양  · 해양 · 쓰레기 등)와 기상 이변으로 지구촌은 지금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우리의 미래는 정말 무엇에 달려 있는가?’ 자연과학  · 인문학 · 신학자인 전헌호 신부님은 이 물음과 관련하여 물질과 물질문화에 대한 기존의 사고방식을 재고찰해 나가며현대 문명과 공해 문제에 대한 신학적 고찰과 비판 및 방향을 제시하고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 미래의 삶이 보장될 것인지진정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는 진실과 자신을 발견하도록 개개인을 안내해 줍니다. ‘인간에의 연민’ 논문의 핵심내용을 정리하여 나눔의 글에 올립니다.

 

서 문

 

약 20년 전 고등학교를 다닐 때 우리를 가르쳤던 선생님들그중에서도 특히 물리화학 등 자연계 선생님들께서는 현대 문명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견들을 가지고 있었다그들은 우리들에게 과학 문명의 발전은 우리를 모든 미신과 불행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있고아직도 극복되지 않은 부분들은 과학 문명이 좀더 발전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언젠가 극복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만족스럽고 행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가르쳤다……

 

그 이후 1975년에 로마 클럽의 보고서를 읽고 난 뒤과학 문명의 발전이 일반 사람들이 당시까지 생각하고 기대해 왔던 것과 일치되어 가고 있지만은 않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해 재고찰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하지만 한국 내에서 또 국제적으로 과학 문명에 거는 기대는 여전히 대단한 기대여서 이로 인해 발생되는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찰 없이 계속 공장을 짓고 산업화를 지속해 나왔다심지어 당시 통치의 최고 책임에 있던 자는 전국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끊임없이 솟아올라야 조국의 미래가 있다고까지 했다.

 

그렇게 치달아 오면서 배고픈 것은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들이 더 행복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고는 아직도 여전히 말할 수 없는 상태이다오히려 우리는 여기저기서 우리들 삶의 질이 저하되었다는 평가들을 듣고 있고 스스로도 느끼고 있다……아마도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요 다소는 감상적인 사고의 발달로 여기기까지 했었겠지만소련의 원자력 발전소 체르노빌 사건을 체험한 이후 현대 과학 문명과 문화의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1990년 1월 1일 평화의 날을 기해 발표한 문서에서 이 문제가 날로 심각하게 축적되어졌고 이대로 나가면 인류의 생존 문제까지 의문시됨을 강하게 언급하고 있다.

 

실로 오늘날엔 회개metamoia와 삶의 양식을 재고찰하기 위한 교육이 심각하게 필요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우리 인류의 이 문제에 대한 반응이 늦으면 늦어질수록 그만큼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심각해져 갈 것이다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현 상황에 대해 분명히 의식하고물질과 그 문화에 대한 생각과 삶의 형태를 재고찰하자는 것이다.

 

로마노 과르디니의 제의들은 현 문제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들에 자극과 힘을 줄 수 있을 것이고 새로운 삶의 양태를 찾는 길에 도움이 될 것이다여러 자연과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이 문제의 극복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들을 이미 해오고 있고 1부에서 이들의 의견들을 일부 소개하고 있다뮌헨 대학에서 칼 라너의 선임자였던 로마노 과르디니는 이 문제가 오늘날과 같이 심각해지기 전에 이미 예언자적 안목으로 많이 언급을 했었다. 2부에서 그의 생각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 부 >

 

인류의 현 상황 고찰과

문제 극복을 위한

제언들

 

 

 

1

도 입

 

인류의 역사가 현재까지 진행되어 오는 과정에서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주장들은 많이 있었다특히 역사적인 큰 변화의 시기에 세상 종말에 대한 주장은 백성들을 사로잡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전쟁이나 자연재해굶주림이외의 여러 가지 일들로 시달려 고통과 공포 속에 놓이게 될 때 인류는 그때마다 세상 종말에 대한 생각을 해 오곤 했었다.

 

이러한 변동과 어려움의 시기에는 또한 바로 앞에 다가온 세상 종말의 날짜까지 그때마다 언급하는 소위 예언자들과 사이비 종파들이 나타나기도 했다이러한 우주적 재해를 예시하는 모든 표현들은 어떤 새로운 결단을 종용하는 회화적인 옷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류 역사를 전체적인 한 눈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시도들은 다른 관점으로 방향을 제시해 보고 있다아놀드 토인비는 여러 민족들 각각의 발전은 하나의 공통된 기점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역사적 발전에는 하나의 시작과 하나의 목표가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인류 진화론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제법 크다고 간주할 수 있겠다.

 

인간의 수와 상호간의 관계의 증가로 인해또 서로 공통된 힘에 대한 의식의 깨우침과 상호 공통된 존재자로서의 두려움들로 인해 미래의 인간들은 틀림없이 하나의 공통된 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그리고 인간들이 그들의 모아진 정신적 힘과 측량 불가능한 무한한 우주 그리고 그들이 좁은 감옥에 사로잡혀 있음을 인지하게 될 때 이 의식은 성숙하여 완성될 것이다.

 

샤르댕은 이 우주적 의식이 완전히 성숙하기까지 수천 년수십 만 년의 기간을 잡고 있으며 인류는 지금 초보 단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그런 이 우주적 의식 역시 하나의 한계를 갖고 있다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

 

 댓글목록

 작성자:  글라라님 (115.143.9.57)     작성일시: 21-08-19 15:36

이 글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에 와 닿은 과르디니의 세계관 :
세계는 무無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것으로 인간의 의식에 인식된다. 무無는 세계의 제한성과 고독성을 회상하게 한다.
무는 고독을 의미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존재의 특성이다. 그러므로 어떤 구체적인 것으로 있다는 것은 무 앞에 있음을 의미하고 이것은 또한 고독을 의미한다.
과르디니에 의하면 세계는 무無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꿰뚫어져 있으며 하느님과 세계의 경계에 무가 자리 잡고 있다. 무는 세계가 하느님으로부터 불리어진 존재로서 그의 한계 안에 존재함을 알려주고 있다. 과르디니는 이러한 것이 바로 세계의 특성을 결정짓는다고 한다. 그는 무는 하느님과 세계의 경계선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진정한 무(無)는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한다. 하느님은 세계가 하느님 자신이 아니고 제한 된 존재라는 것과 하느님 자신이 존재론적으로 세계의 주인이며 세계는 피조물로서 하느님 앞에 존재론적으로 순종 안에 서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하느님은 세계를 만드신 분으로서 자신과 피조물 사이에 구분을 짓는 경계선으로서 무(無)를 설정하셨다. 이것은 또한 세계가 무로부터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이것으로 무(無)는 하느님을 알려주는 것이고 하느님이 자신을 보여주는 장소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렇게 무는 하느님에 대한 체험과 하느님의 영역을 알려주는 존재로, 긍정적인 존재로 와 닿고 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고독=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인간이 고독한 이유도 함께 알게 되었습니다. 과르디니의 세계관은 감명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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