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생태환경

생태 신학자 토마스 베리 신부님 (중)

admin8345 0 2,043 2016.06.26 21:55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50)토마스 베리(중)

인류 생존 위해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문명 제시▲ 토마스 베리는 현재의 생태 위기를 극복하고 인류가 지속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 문명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대표적인 열대 우림인 아마존 삼림 생태계를 황폐화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벌목과 목탄 제조 산업 현장. 【CNS】

▲ 이재돈 신부(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교수)문명의 발전단계

토마스 베리 생태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생태계 파괴를 문명사적 관점에서 조망하면서 인류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문명 형태로 생태문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리는 인류 역사의 발전 단계를 부족/샤머니즘 시대, 종교/문화 시대, 과학/기계 기술 시대, 그리고 생태 시대로 분류한다.

인류 역사의 각 단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부족/샤머니즘 시대는 우주의 궁극적 신비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이 발달한 시기이며, 이러한 경험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베리는 설명한다.

종교/문화 시대는 소위 인류 역사상 위대한 문명이 발전한 시기로 사회의 계층화, 세련된 종교의식, 논리 정연한 이론들과 영성을 수련하는 방법들이 발달하였다. 이 시기의 주된 특징은 인간의 관심이 우주의 현상세계보다는 초월적 절대자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중세기 말기에 서양을 중심으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인간의 관심은 절대자에서 우주의 물리 세계로 전환하였고 그 결과로 과학과 기계 기술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과학과 기계 기술의 시대는 발달한 과학과 기계 기술을 통하여 인류 생활을 향상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지구 생태계를 대규모적이고 무차별하게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인간이 자연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착취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이로써 인간과 지구 공동체와의 신비로운 유대는 사라지게 되었다.

과학과 기계 기술 시대 이후에 인류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시대로 베리는 생태문명을 제시한다. 생태문명은 인류 역사의 네 번째 단계이다.

최첨단 기술문명과 생태문명 간의 갈등

지구적 차원으로 진행되고 있는 생태계 파괴 앞에서 인류에게 현재 두 가지 선택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최첨단 기술문명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생태문명으로 가는 길이다. 최첨단 기술문명은 인간의 산업기술에 근거한 문명인 반면에, 생태문명은 지구의 자기 조직 과정인 지구 기술에 근거한 문명이다. 최첨단 기술문명은 거대 자본이 자신의 이익 추구를 위하여 자연을 착취하고 조작하는 문명 형태이고, 생태문명은 지역 공동체가 자연과 함께 존재하면서 함께 진화하는 문명 형태이다.

최첨단 기술문명과 생태문명은 그 사고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에 양자 사이에 긴장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20세기를 주도했던 문제가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 사이의 정치 사회적 갈등이었다면, 21세기를 주도하는 문제는 자연을 계속 착취하려는 자본주의자들과 자연을 보전하려는 생태주의자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다. 4대강 사업, 도롱뇽 소송, 밀양송전탑, 강정 해군기지 등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갈등은 근본적으로 최첨단 기술문명과 생태문명 사이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지구 생태계가 미래에도 지속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첨단 기술문명이 아니라 생태문명을 선택해야만 한다고 베리는 주장한다.

생태문명 실현의 전제 조건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 의식의 근본적 변화와 지구적 차원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베리는 주장한다. 인간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네 가지 사회 체제, 즉 정치ㆍ경제ㆍ교육ㆍ종교가 그 기본 원리를 인간중심주의에서 생명중심주의로 바꿔야 한다. 인간중심주의로는 생태문명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문명의 정치, 경제, 교육, 종교는 인간의 이익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반면, 다른 존재들의 가치와 권리를 소홀히 함으로써 인류 문명과 지구 상의 생명을 보전하는 데 실패하였다. 따라서 네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는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첫째, 현대의 정치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베리는 현재의 정치 체제가 국가나 인간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하며,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는 새로운 정치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구는 지구 전체 기능 안에서만 존재하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는 하나의 실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구를 부분적으로 구원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라들의 연합(The United Nations) 정도가 아니라 종들의 연합(The United Species)이 필요하다. 인간의 권리만이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democracy)에서 생명주의(bio-cracy)로 변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1982년 유엔 총회에서 통과한 ‘자연을 위한 세계 헌장’은 새로운 정치적 법적 체계를 위해 매우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헌장은 모든 형태의 생명은 유일하며 인간에게 유용함에 상관없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인간은 지구의 기능을 지배하는 막강한 힘을 지녔기에,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법적 장치가 특별히 필요하다.

둘째, 현대의 경제 체계도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현대의 경제 체제는 자연 세계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이런 사고방식이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고 베리는 주장한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자연 세계의 엔트로피는 그 한계에 이를 것이고 현재의 경제 체제는 더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하여 인류는 지구 경제학이 우선적이고 인간 경제학은 부차적이라는 새로운 경제 의식을 가져야 한다. 지구 경제학은 인간 경제학의 전제 조건이다. 지구 경제의 온전함을 유지하는 것이 어떠한 인간 경제 프로그램에서도 최우선 목적이 되어야 한다. 지구 경제가 건강하다면 인간 경제도 건강할 수 있지만, 지구 경제가 부도에 이른다면 인간의 경제도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현대의 교육 체제도 근본 원리가 변해야 한다. 사회의 지성적 체계인 대학은 새로운 세대에게 미래지향적 전망을 제공하기 때문에 특별히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 대학에서 가르치는 내용은 지나치게 인간중심주의에 빠져 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인문학적 내용은 인간과 자연 세계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고양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는데, 이것이 현대 세계가 지닌 어려움의 깊은 요인이다. 현재 대학의 교육 내용은 학생들에게 자연 세계와 친밀히 지내도록 하는 역할이 아니라 자연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확대하는 역할을 하도록 준비시키고 있다고 베리는 비판한다. 생태문명 실현에 적합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다음 세대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우주 이야기에 근거한 통합적 교과과정이 필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넷째, 종교도 그 가르침의 강조점이 변해야 한다. 그동안 종교들은 자연 세계가 인간에게 가장 우선적인 계시적 경험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소홀하였다고 비판한다. 특별히 그리스도교는 창조 세계에 깃든 계시를 소홀히 한 채 성경을 통한 계시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현대의 생태위기에 대하여 책임이 적지 않다고 베리는 지적한다. 생태문명을 실현하기 위하여 종교는 자연이 단순히 경제적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숨결과 손길이 깃든 신성한 창조 세계임을 강조해서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종교는 생태계에 대한 새로운 윤리를 발전시켜야 한다. 현대세계에서 우리는 자살ㆍ살인ㆍ종족살해 등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생태계와 지구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윤리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생태계 파괴, 지구 파괴를 절대적 악으로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 원칙이 있어야 한다. 지구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닌 인간은 그 힘과 같은 정도로 책임감과 윤리 의식도 함양시켜야 한다.

현재의 생태 위기를 극복하고 인류가 지속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문명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토마스 베리 생태 사상의 핵심이다. 인류가 자연 세계와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적절한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며, 그에 근거하여 정치, 경제, 교육, 그리고 종교의 근본적 원리가 인간중심주의에서 생명중심주의로 변해야 한다. 생태문명은 인류의 문명사적 관점에서 볼 때 더욱 진화된 문명 형태이다.

이런 이유로 베리는 현재의 생태계 파괴를 위기만이 아니라 인류와 지구를 위한 호기로 보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위기는 호기이기도 하다. 베리는 생태문명을 이루는 것이 우리 시대에 주어진 ‘위대한 과업’(The Great Work)이라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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