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화성지부

사강 보금자리 설립에 관한 이야기

관리자 0 1,250 2018.08.23 16:52
1990년 무렵, 사강. 서신 지역에는 무의탁 노인과 부랑인들이 유난히 많았다. 1989년 사강 성당에 부임한 본당신부는 사목회에 사회복지분과를 만들어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게 하였고, 사회복지 기금을 조성하여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다. 한편, 당시 사회복지분과 차장을 맡고 있던 이성태 요셉 형제는 60년대부터 지역 내 정신질환 환자, 걸인, 무의탁 노인들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상황이 열악한 사람들 중 희망자 30여 명에게 충북 음성 꽃동네 입소를 중재해 주기도 하였다. 꽃동네 측에서는 전국에서 입소자가 몰려오니 너무 힘들다며 그 지역 일은 그 지역에서 감당해 주면 좋겠다는 하소연을 하여 본당 신부는 사회복지 분과위원들과 논의후 꽃동네 오웅진 신부를 만났다. 오웅진 신부는 그 쪽 지역에 가능하면 크게 시설을 하나 마련하여 도움을 주었으면 하고 희망하였다.
이런한 계기로 본당신부는 분과위원들과 뜻을 모아 이 지역에 무의탁 노인들을 작은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자고 뜻을 모아 시작하였다.
사강 서당 사회복지분과장 이었던 이병만 요한 보스코 형제가 진입로와 본관대지 약 500여 평을 희사하여 시작한 양로원은 기증받은 땅을 잡종지로 변경하고 작은 축사 관리사 집으로 어렵게 시작하였다.
당시 진입로가 확보되지 않아 신축 허가를 받으려면 도로사용 승낙서를 화성군에 제출해야 했는데 신축허가 만길을 3일 앞둘때까지 주인 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 동네로부터 약 200여미터는 논두렁 길에 분과장 이병만 형제로부터 땅을 도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증여 받았지만 막상 진입로40여 미터는 남의 받 한 가운데를 잘라 지나야 했다. 신축허가 만가 3일 앞둔 본당신부는 1991념 8월 15일, 성모승천축대축일 미사를 마치고이성태 형제와 함께 토지 등기 등본에 있는 주소만 보고 인천 주인 집을 찾아 나섰는데 그 번지는 집도 없는 빈 도로 주소였고 3번이나 이사한 집을 찾아들어선 시간은 새벽 1시 30분이었다. 잠든 주인을 깨워 쳐들어간 집은 주인 남편은 돌아가셨고 부인만 아들 둘을 데리고 사는 약간 노 과부였다. 생판모르는 분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하였고 무의탁 노인을 돕기 위한 작은 시설을 마련하고자 하는데 길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하였다.

위의 내용은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50년사(p 574-581)에 기록된 글의 일부입니다.
문서로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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