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화성지부

[밀알하나] 미친 사람에 미친, 한 사람 때문에

관리자 0 1,127 2019.10.05 21:21


[밀알 하나] 미친 사람에 미친, 한 사람 때문에 /문병학 신부

“무의탁 노인들 돌보자”며 의기투합
사강본당 신자들 마음 모아 시설 완공
25년 운영하며 나눔의 공동체로 성장


가톨릭신문 발행일2017-09-17 [제3062호, 3면]




1989년쯤 첫 본당 사강에서의 일입니다. 어느 날 잘 모르는 한 형제가 대뜸 찾아와서 “신부님, 여기 불쌍한 한 사람이 있는데 꽃동네로 좀 보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네, 그런데 누구세요?”

“네, 저는 이 바오로라고 하는데요. 이 동네에 정말 불쌍한 사람이 있어 꽃동네로 꼭 좀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나중에 들으니 그분은 ‘미친 사람에 미친 사람’이라는 별칭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자신도 온갖 지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렵고 불쌍한 이들을 보면 돕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반복된 그분과의 인연으로 꽃동네 수사님으로부터 원망 아닌 원망을 듣게 되었습니다.

“신부님, 꽃동네도 좀 생각해 주셔야 됩니다. 온 전국에서 보내주신 행려자, 정신질환자들로 병동이 만원이고 지자체로부터 늘 지적을 받아 저희도 참 곤란합니다. 가능한 각 지역에서 돌보아주셔야 되는데….”

수사님의 안타까운 하소연에 부끄러움과 편치 않은 마음을 갖다가, 본당 사회복지분과 위원들과 함께 음성 꽃동네 오웅진 신부님을 찾아뵀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대뜸, “신부님! 그 지역에서 큰 복지시설을 하나 만들어보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이들은, 판단과 실행이 빠르고 행동이 단순하고 직접적인 특징을 가진 듯 했습니다.

본당으로 돌아온 뒤 사회복지분과 위원들은 “자! 우리 본당 지역에 있는 무의탁 노인들은 우리 힘으로 한번 돌보아 드려 봅시다”라고 했습니다. 분과위원들이 작은 땅과 십시일반의 기부금과 건축 장비 등을 후원하고, 1000여 명의 교우 중 약 700여 명이 한 달에 천 원씩이라도 후원 회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재정적으로도 건축법적으로도 어렵고 힘든 난관을 잘 헤치고, 마침내 당시 교구장이신 고(故) 김남수 주교님을 모시고 사회복지국장 김화태 신부님과 함께 사강보금자리 무의탁 노인시설을 봉헌했습니다.

그 후 성빈센트드뽈자비의수녀회 수녀님들이 보금자리 설립 25주년 은경축을 맞을 동안 많은 무의탁 노인들을 깊은 사랑과 애정으로 돌보아주셨습니다. 지금은 그 곁에 이기수 신부님이 운영하는 장애인시설, ‘둘다섯해누리’도 함께하면서 더 큰 사랑과 나눔의 공동체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덕분에 교구 사회복지국장으로 재직하다 미국에서 공부도 하고 사회복지 및 사회사목에 눈을 뜨는 은총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최근엔 교구 신부님들과 함께 ‘공생공빈 밀알 사회적 협동조합’을 창립했으며, ‘생명 기부 나눔 운동’을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자고 여전히 다짐하고 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요한 12,24)


문병학 신부 (평택대리구 세마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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