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화성지부

사강 보금자리 1

관리자 0 1,143 2020.03.04 23:41

20151014 크리스티나수녀  

 

2) 사강 보금자리

 

설립: 1992630

주소: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밸미길 87-45

(구주소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백미리 592번지)

 

1) 설립목적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오 25,40)라는 그리스도의 복음정신에 따라 가난하고 소외되고 버림받은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남은 삶의 여정을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느끼며, 인생의 완성을 하느님 안에서 편히 맞이하시도록 도와 드림을 목적으로 합니다.

 

2) 설립경위

 

사강 서신 지역에는 서해안 지역으로 무의탁노인 부랑인들이 유난히 많았다. 1989년 사강성당에 부임한 문병학(요셉) 신부는 사회복지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사회복지분과를 만들어 신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도움을 청하여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게 하였고, 사회복지기금을 조성하여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다. 한편, 당시 사회복지분과 차장을 맡고 있던 이성태(요셉)씨는 60년대부터 지역 내 정신질환자, 걸인, 무의탁 노인들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상황이 열악한 사람들 중 희망자 100(30)여 명에게 음성 꽃동네 입소를 중재해 주기도 했다. 그곳 수사들은 전국에서 입소자가 몰려오니까 너무 힘들다그 지역 일은 그 지역에서 해결하면 좋겠다고 했고, 오웅진(요한) 신부도 크게 지으라고 조언했다. 이런 일들이 계기가 되어 문병학(요셉) 신부와 사회복지분과 위원들이 모여 그 지역에 무의탁노인과 부랑인들을 위한 집을 짓기로 결정하였다. 처음에는 할아버지할머니를 막론하고 무의탁 노인들과 부랑민을 모시려했다. 그런데 당시 수원교구 사회복지회장 김화태(제르바시오) 신부와 의논하는 과정에서 우리 교구에 할머니 양로원은 많은데 할아버지 양로원이 없으니 무의탁 남자노인을 모시자해서 할아버지 양로원을 만들게 된 것이다.

먼저 본당 사회복지분과 위원장인 이병만(돈보스코) 형제가 진입로와 본관 대지 약 500여 평을 희사하기로 했다. 당시 기증받은 땅이 임야여서 합법적으로 양로원을 짓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문병학 신부와 사회복지분과 차장 이성태씨가 길바닥에 눕는 사람들이 있으니 도와주어야지 어떡하냐라고 행정관계자들을 설득하여 임야를 잡종지로 변경하고 거기에 축사와 축사관리인의 집을 짓는 방식으로 일이 진행이 되었다.

또 한가지 문제는 부지 진입로를 큰 밭이 막고 있어서 그 밭 한가운데를 지나가야 하는데 신축 허가를 받으려면 도로사용승낙서를 화성군에 제출해야 했다. 그 땅은 인천사람의 소유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신축허가 만기일 3일을 앞둔 19918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드린 후 문병학 신부와 이성태 씨가 서둘러 인천으로 찾아가 땅주인을 만났다. 땅주인은 남편이 대세를 받고 세상을 떠난 터여서 땅에 한번 가봐야 하는데 신부님이 오셨으니 내주겠다고 해서, 1천만 원을 대가로 지불하고 도로사용승낙서를 받았고, 화성군의 신축승인이 나서 마침내 819일자로 시공이 결정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창현 의원이 중재역할로 도움을 주었다.

건축비는 처음에 이성태씨가 개인으로 500만원 내놓았고, 본당 사회복지 예산 10%와 새우젓 장사, 주일 국수장사, 비누장사로 모은 기금을 포함하여, 사강 성당 신자들을 중심으로 지역내 타종파인들 상당수와 타지역 후원회원 약간 명 하여 700여명이 낸 후원금으로 충당하였다. 본당 신자들은 아이들을 포함해서 일인당 천원씩이라도 내도록 했고, 동네 사람들도 참여하였다. 양로원설계는 문병학 신부가 직접 평면도를 그린 것을 건축사가 보완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목수, 벽돌공, 골조 하는 사람, 미장하는 사람을 모두 직영으로 운영하여 집을 지었다.

여기에 설립 초기의 진행과정을 사강성당 자료에서 인용한다.

 

“199114일 사회복지분과 위원들을 중심으로 초동 발의인 모임을 갖고 당년 41020명의 발의인과 170명의 후원회원을 확보하였다. 진입로로 200평의 땅을 소유자 양호석에게 840만에 매입하고 여기에 약 500만원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약 600m의 진입로 공사를 당년 620일 시작하였다.

당년 928일 백미리 현장에서 사강본당 신부인 문병학(요셉) 신부를 모시고 기공식 및 축성 미사를 봉헌하였다. 사회복지분과 위원 이성태(요셉) 형제를 총감독으로 하여 직영으로 공사하였으며 사강 본당 신자들의 노력 봉사와 함께 약 7개월 정도 걸려 본관 59, 지하 21, 별관 30, 110평의 건물을 총 공사비 14천만 원을 들여 427일 완공하였다. 1992221일 전() 284평을 1천만에 구입하여 배수로와 자활 정착지로 사용토록 하였으며 조경공사로 약 1천만 원 정도 소요되었다.”

 

이렇게 하여 사강성당으로부터 서해 안쪽으로 약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속에 작고 아담한 무의탁 남자 노인들을 위한 사강보금자리가 완공되어, 1992630일에 김남수(안젤로)주교의 주례로 사강 본당 신자들과 후원회원들, 당시 사회복지회장 김화태(제르바시오)신부, 국회의원 정창현씨 등 내 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축성미사를 봉헌하였다. 당시 무의탁 남자노인 6남자봉사자 1여자봉사자 1명이 상주하면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다.

교구 소속으로 편입

운영은 사회복지분과에서 맡기로 하고 운영회칙을 만들고 지속적인 후원금 마련 방법 등을 규정하였다. 그런데 정착한 지 6개월도 안되어 19932월에 문병학 신부는 교구 사회복지국장으로 이동되고 나서 본당에서 운영하기 어려우니 교구에서 가져가기를 계속 요청하여, 1994510, 경기 제1호로 사회복지법인 천주교 수원교구 사회복지회’(이사장: 수원교구 교구장 주교 회장: 문병학 신부) 허가 취득과 함께 사강 보금자리는 교구소속이 되었다. 그러나 운영만은 사강신자들이 애정을 갖고 계속하였고 운영비도 후원금으로 충당하였다.

우리 수녀회 위탁운영

교구소속이 된 지 얼마 안되어 더 이상 신자들이 상주하면서 관리하기가 어렵게 되자, 문병학 신부(당시 수원교구 사회복지국장)는 우리 수녀회에 위탁 운영을 의뢰하였다. 우리 회에서는 할아버지 양로원이라는 이유로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지만 사강성당에 분원이 있고 주변에 인애농원도 있어 연계하기 좋은 조건이었고, 다행이 김경자 파올리나 수녀와 김혜선 레오니 수녀가 봉사를 자원하였기에, 19941020일자로 수녀들을 파견하고 사강 보금자리 분원을 신설하였다.

첫원장 파울리나 수녀가 나누어준 체험담을 여기에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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