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정신으로 생명을 지키는 기후 시민. 생태 사도가 됩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신해. 신유. 기해. 병오. 병인박해 및 한국 순교자들의 신앙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신앙 선조들은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분들은 신앙을 단순히 입으로 고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 증언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분들의 정신을 어떻게 이어 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기후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과 산불은 인간의 생명과 자연의 질서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는 특히 가난한 이웃과 어린이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에게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단순히 환경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에 관한 문제이며, 정의에 관한 문제이고,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에 관한 문제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공동의 집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인은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소중히 여기고,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으며, 다음 세대의 삶을 책임 있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한 가지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1993년, 저는 천주교 수원교구 당시 사회복지국에서 자원 봉사자 양성 교육을 하면서 생명 공동체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약 백 명 가운데 환경과 생명 문제에 관심을 가진 열다섯 명을 모아 되살림 팀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고등동 본당 보좌 신부였던 황창현 신부님을 지도 신부로 모셨고, 전국 가톨릭 환경 사제 모임과도 연결해 함께 활동했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열다섯 명의 작은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경험을 통해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실천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시작이 필요합니다.
저는 앞으로 가톨릭 세계 청년 대회를 앞두고 우리 여주·이천 지구에서 기후 시민, 기후 사도, 생태 사도, 기후 설계자를 양성하는 일을 함께 시작하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기후 시민은 자신의 가정과 일터에서 생명을 지키는 생활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기후 사도는 기후 위기의 현실을 이웃에게 알리고, 더 많은 사람이 생명을 지키는 일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생태 사도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공동의 집을 돌보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는 사람입니다.
기후 설계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지역의 기후 문제를 살펴보고, 사람들과 협력하여 실제적인 해결 방안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이 일에는 전문가만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르신도, 청년도, 부모님도, 어린이도, 농업인도, 교사도, 직장인도 각자의 자리에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본당에서 전기를 조금 덜 사용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것도 시작입니다. 폭염에 취약한 이웃을 돌보고,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며, 지역의 생태 환경을 함께 가꾸는 것도 중요한 실천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우리 여주·이천 지구에서 시작한 작은 움직임이 더 큰 생명운동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합니다.
누군가는 기후 시민으로 참여하고, 누군가는 이웃을 초대하는 기후 사도가 되며, 누군가는 생태 사도로서 공동의 집을 돌보고, 누군가는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기후 설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심 있는 사람을 찾아 함께 배우고, 작은 실천을 시작하며, 그 실천을 공동체 전체로 넓혀 가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세계청년대회도 우리에게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지역을 찾아오는 청년들에게 신앙의 유산뿐 아니라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미래를 책임지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청년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아름다운 추억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살아갈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고 안전하며 희망이 있는 곳으로 만들려는 책임도 물려주어야 합니다.
오늘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이 자리에서 우리 각자가 작은 결심 하나를 하면 좋겠습니다.
나는 생명을 지키는 기후 시민이 되겠습니다.
나는 이웃 한 사람을 초대하는 기후 사도가 되겠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창조물을 돌보는 생태 사도가 되겠습니다.
나는 우리 지역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기후 설계자가 되겠습니다.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우리는 기후 위기의 현실을 두려움 없이 직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은 절망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희망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순교자들이 자신의 삶으로 신앙을 증언하셨듯이, 오늘 우리도 생명을 사랑하고 이웃을 돌보며 미래 세대를 위해 행동함으로써 신앙을 증언합시다.
오늘 이 자리가 단순히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자리에 머물지 않고, 그분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을 새롭게 일으키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주·이천 지구에서 시작한 작은 실천이 우리 교구와 한국 교회, 나아가 세계의 청년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생명 운동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순교자의 정신으로 생명을 지킵시다.
기후 위기 앞에서 용기를 냅시다.
미래 세대를 위해 함께 행동합시다.
2026년 10월 17일 여주. 이천 지구장 문병학 요셉신부